목 낭랑은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났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가 홀로 아이를 키우면 남이 쉬이 업수이 여길 것이 두려워 목 낭랑의 머리를 땋아 올리고 바지를 입혀 사내아이로 속여 키웠다. 목 낭랑은 어릴 적부터 기지가 뛰어나고 성정이 대담한 것이, 여느 사내아이도 감히 따라올 수가 없어 또래 애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하곤 하였다. 한...
소원을 들어주는 연淵이 있다고 했다. 체기를 다스리는 약방문을 써내려가던 강호낭중에게 그 소문을 들려준 것은 주인의 말을 지키고 서있던 자그마한 종자였다. 말고삐를 부여쥔 채로 꾸벅꾸벅 졸던 아이는, 의원이 말을 붙이자 모처럼의 말동무가 신이 나는 듯 이런저런 소문을 들려주었다. 어느 집이 여우에 홀려 하루 아침에 일가족이 몰살했다는 둥, 고양이 고기가 허...
강을 따라 따라 걸어 내려간 끝에, 의원은 바다를 만났다. 언젠가 보았던 호수, 언제나 보는 강처럼 푸름이 물결쳤으나 본디 나무인 의원은 창해는 강과 호수와는 달리 공기의 맛이, 향이 확연히 차이가 있음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물비린내와는 다른 비릿하고 짠 내음이 소매를 흔들었다. 약간의 끈적임을 담은 바람이 얼굴에 부딪혔다가 달아난다. 공기의 맛이 찝...
정情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요즘 들어 의원은 부쩍 그런 생각에 골몰해있었다. 愛, 情, 慕, 戀, 일컫는 말도 다양할 뿐더러 뜻하는 의미나 작용하는 방식조차 다르다. 의원이 유독 그것에 관해 골몰한 것은 다름아니라 어여삐 여기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듯 굴던 어느 꽃의 정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 감정 그리 목숨...
봄 내음이 물씬 났다. 겨우내 얼어 붙어있던 땅을 뚫고, 보드라운 연녹색의 잎이 돋는다. 비가 내리고 나면 이따금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검은 흙 위를 녹색 융단이 뒤덮는 것은 금세였다. 마른 가지에도 물이 차올라 새순이 돋고, 통통하게 부풀던 꽃망울이 일제히 터지며 천지에 색과 향을 더하였다. 온 천지가 향내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아직 패지 못한, ...
이곳 저곳을 떠돌며, 젊은 의원에게도 세월이라는 것이 덧씌워졌다. 덧씌워진 세월만큼 의원의 눈가며 입가에도 부드러운 곡선이 나이테처럼 새겨졌다. 신선이 인간들처럼 나이야 먹겠냐마는, 꼭 그 세월만큼 의원에게는 홍진을 즐기는 요령도 차곡 차곡 쌓였다. 각 지방의 명물, 볼거리, 그리고 먹거리. 본디 나기를 나무로 났던 의원에게 있어서 먹거리, 맛이라는 것은 ...
두 사람이 허 의원네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자, 하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허 낭자의 앞에서 숙맥처럼 뻣뻣하게 굳어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진 거인이 점잖게 물었다. “환자가 깨어났다 해서 왔네만, 의원께서는?” “주인 나리께서는 다른 환자를 보고 있습니다.” 대인께서 오시면 안내해드리라 하셨다며 하인이 앞장섰다. 진 거인은 장 거사와 가볍게 눈짓을...
그는 한때 만승지국萬乘之國의 천자였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그가 제위를 물려받았을 때에는 이미 그의 제국은 그 세가 상당히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그 진한 피로 이어져 있던 제후들은 대를 거듭하며 타인이나 다름없어졌고, 각지에서는 호족들이 세를 불려나갔다. 천자의 제국에 고개를 숙였던 새외塞外마저 어느 틈엔가...
水惶傳 一 옛날 모현에 심씨 성을 가진 부장이 있었다. 심부장은 덩치가 크고 용력이 뛰어났으나, 얼굴이 얽고 말이 어눌해 모두의 놀림을 샀다. 하루는 동료들이 심씨를 희롱하여 말하기를, 심가는 비록 덩치가 크고 용맹이 뛰어나나 얼굴이 얽고 못나 아직 운우의 정조차 알지 못하는 깨끗한 몸이 아니냐 하고 웃었다. 그 말에 심 부장이 한탄하여 말하였다. 여러 ...
서녘 끝에 걸린 자색 노을이 거멓게 어둠으로 칠해지는 것을 올려다보며 진 거인은 말 고삐를 바투 잡아당겼다. 이 진 거인이라는 자는, 3년 전 해시에 합격하여 거인이라는 호칭을 얻었으나, 고만 벼슬길에 나가는 일 없이 그저 집안의 일이나 돌보며 지내는 이였으니, 고상하게 말하자면 초야에 파묻힌 선비였고 상스럽게 일컫자면 한량이라. 이 날도 진 거인은 벗인 ...
짤랑짤랑, 귀에 익은 방울소리가 들려 농부는 허리를 폈다. 저 멀리서도 색바랜 깃발과 색색의 장식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가끔 마을을 방문하던 늙수그레한 의원을 떠올리며 농부는 서둘러 밭두둑을 올랐다. 짤랑, 짤랑, 낡은 방울소리가 가까워진다. 별주부를 꼭 닮은, 늙은 의원을 기다리던 농부는 길을 걸어오는 사람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땅딸막한 늙은 ...
짤랑, 짤랑. 방울이 흔들리며 좌중의 이목을 끄는 소리를 내었다. 늙수그레한 사내는 한 손에는 낡은 방울을 들고, 한 손에는 대나무 뿌리로 만든 지팡이를 짚으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늙은 사내는 키가 땅딸막하고, 떠도는 팔자에 걸맞지 않게 살집이 있어 멀리서 보면 말뚝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지, 커다란 약함까지 지고 있으니 멀리서 보자면 그 외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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